“표현의 자유에서 싹튼 시민사회의 강건성이
강한 민주주의를 만듭니다.”
KISO포럼 뒤 이야기 더 듣고 싶다는 요청 많아 인터뷰
표현의 자유 이론적 토대 제시하고 한국적 대안 명쾌하게 제시해
KISO는 왜 이준웅 교수를 다시 찾아갔나?
지난해 12월14일 오후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이하 KISO)는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제4회 KISO포럼을 열었습니다. 주제는 ‘인터넷에서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책임에 대한 재설계’였습니다. KISO가 ‘표현의 자유’를 주제로 포럼을 갖게 된 것은 ‘국민이 주인’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의 따끈따끈한 국정과제를 고려해서였습니다.
촛불의 함성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기존 정부들과 차별화된 국정과제를 수립해 추진해 오고 있습니다. 그 중에 ‘표현의 자유 신장’은 ‘국민주권의 촛불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 첫 범주에 속해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일 겁니다.
실제 청와대는 홈페이지에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강화하기 위해 공적 규제를 축소하고 자율규제를 강화해 2016년 70위인 언론자유지수를 30위권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3자 명예훼손제 도입’처럼 기존의 법리와 충돌하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네티즌의 발언을 막는데 골몰했던 박근혜 정부와는 큰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표현의 자유 및 자율규제 기반 강화라는 명제가 옳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쉽게 고개를 끄덕일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수긍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만만치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표현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며 또 어떻게 해야 자유를 보장할 수 있을지 규정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특히 강한 공적 규제를 해온 한국적 문화를 고려할 때 ‘자율규제 기반 강화’라는 말은 ‘강철로 된 무지개’처럼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지난해 대선 공약으로 등장했고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로 명시됐지만, 현재까지도 관련해 무성한 담론 대신 침묵이 흘러왔습니다. KISO포럼 주제를 표현의 자유로 기획된 이유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준웅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과)의 발제는 주목할 만 했습니다. 이 교수는 표현의 자유가 왜 필요한지 탄탄한 근거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 가치가 단순히 구호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민의식 강화 전략처럼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정부가 내용규제에 나서는 것은 자기모순이라고도 말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의 목표는 과거 정부에 견줘 바람직하지만 그 접근 방법은 촛불 광장의 초발심을 반영해야 한다는 충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KISO는 포럼이 끝난 한 달 뒤인 지난 1월17일 이준웅 교수를 서울 중구의 한 음식점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KISO가 포럼 뒤에 발제자나 토론자를 찾아가서 다시 이야기를 듣고 그 내용을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일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입니다. 저희가 이 교수를 다시 찾아간 것은 포럼 이후에도 이 교수의 생각을 좀 더 듣고 싶다는 요청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교수를 만난 장소는 국내에서는 드물게 양식으로 40년이 넘은 서울시청 앞 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이었습니다. 지하 1층에 있는 이 음식점 이름은 이탈리아 말로 ‘지하창고’란 뜻이었습니다. 빛바랜 벽돌 탓에 다소 허름해 보이지만 묵직한 업력이 느껴지는 이 음식점은 미국 수정헌법이 1776년 미국 독립 이후 지금까지도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 왔고 이를 토대로 강건한 시민사회의 전통이 생겨났다는 이 교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에는 적합한 장소였습니다.
KISO 사무처장 권은중
이준웅 교수가 KISO포럼 발제문의 제목은 ‘정치적 발언의 자유: 강한 민주정 국가의 이론, 원리, 방법론’이었다. 이 교수는 이 글을 쓴 목적이 “인터넷상의 정치적 표현을 자율규제로 단계적으로 전환한다는 문재인 정부 정책 명제의 모호성을 해소하기 위해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이론적 관점에서 논의한다”고 밝혔다. 그가 이론적 관점의 기준으로 삼은 것은 표현의 자유를 헌법으로 확실하게 보장하는 미국의 수정헌법 1조였다. 발제문 제목에서 언급한 ‘강한 민주정 국가’란 미국을 뜻한다. 그렇다면 왜 미국이고 왜 수정헌법 1조였을까?
수정헌법 제1조는 ‘미 의회는 언론·출판의 자유 또는 국민들이 평화적으로 집회할 수 있는 권리와 고충 처리를 위해 정부에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을 제정해서는 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원칙이며 그 제한은 예외이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따라서 정부는 공적이거나 사적인 토론의 규제자 역할을 정책적 목표로 삼아서도 안되며 정부를 공격하거나 혹은 인종차별 발언 등 이른바 ‘보호받지 못하는 발언’의 규제 가능성이 낮은 것이 미국의 전통이 돼 왔다. 그러나 이는 한국사회의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KISO: 이 교수님은 KISO포럼에서 “언론학이나 헌법학 교과서에 암시된 미국 수정헌법 1조의 핵심은 ‘시민이 정부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시민사회의 강건성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시민사회의 강건성이 중요한 이유는 뭔가요?
<그림> 알렉산더 드 토크필의 초상
이준웅 교수: 시민사회의 강건성이 있어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제도일 뿐, 그 제도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런 힘이 시민사회에서 형성되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었던 겁니다.
19세기 프랑스 작가인 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은 건국 초기 미국을 관찰해서 쓴 책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미국의 힘은 시민사회의 토론에서 나온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미국은 지역 회의 등을 통해 시민들이 직접 논의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데, 이런 토론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언급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지만 미국에는 이러한 시민사회의 논의를 통해 의제를 설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따르는 전통이 이어집니다.
이는 제가 직접 목격한 것이기도 합니다. 미국 오리건 주 유진에 거주했던 경험이 있는데, 지역 단위에서 수자원 관리와 같은 사안을 다루는 데 전문가는 물론 시민이 직접 참여합니다. 최근 미국 사회에 마을집회, 학부모회의 등이 약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지만, 그래도 지역단위에서 규칙 제정에 시민의 참여가 폭넓게 보장된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나라가 민주화 이행에 성공한 이후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이 많지만, 저는 그 중에서 시민사회 강건성을 확보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민주주의가 제도적 껍질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게 필요합니다. 그리고 시민사회 강건성에 필수적인 조건이 바로 표현의 자유 또는 발언의 자유라는 거지요.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해서 할 일이 많지만, 저는 그 중에서 시민사회 강건성을 확보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민주주의가 제도적 껍질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라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시민사회 강건성에 필수적인 조건이 바로 표현의 자유 혹은 발언의 자유입니다.”
KISO: 미국의 수정헌법의 전통에서 말하는 ‘발언의 자유’와 한국 현실에서 ‘언론 및 표현의 자유’는 다소 거리감이 있습니다. 한국의 현실에서 발언의 자유와 시민사회 강건성은 어떤 관련이 있나요?
이준웅 교수: 우리사회의 최근 20년 간 변화에는 역시 인터넷을 통한 발언의 기회의 확대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에 올라있는 매체 등 각종 서비스를 통해서 시민성이 느리게나마 강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전에 반상회, 주민회, 학부모회 등 기존의 시민적 조직을 인터넷을 통해 지역적 수준에서 활성화하자는 제안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생각했던 미래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지금 기반한 인터넷 커뮤니티로 ‘맘카페’ 등 인터넷 커뮤니티가 자발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맘카페에서 미세먼지 관련해 논의가 진행하면서 ‘어떤 공기청정기를 사야 하냐’ 같은 일상적 논의가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이런 논의에 참여하는 가운데 미세먼지와 기기의 성능 등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접하고 자기 의견을 제시하는 시민들도 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정보를 교류하고, 의견을 나누고, 서로 의견을 조율하는 ‘사소하지만 무수한 의견교환 과정’을 통해 시민성이 강화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교수 발제문에 관심이 간 것은 미국은 어떤 관점에서 표현의 자유를 한결같이 지지해왔느냐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미국 수정헌법의 해석의 정통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철학자인 알렉산더 미클존(Alexander Meiklejohn, 1872~1964)의 말을 인용해 이를 설명했다.
미클존은 그의 책 <자유발언과 자치정부에 대한 관계>(1948)에서 “발언의 자유는 모든 유권자에게 자치사회의 시민이 다루어야 하는 문제를 이해하도록 충분히 참여의 기회를 제공하는데 있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에서 발언의 자유가 단순히 개인의 발화 차원이 아니라 민주적 의견 형성을 통한 통치에 대한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클존의 견해는 지금까지 미국 내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가장 정통 있는 해석으로 꼽힌다.
이런 해석은 우리가 생각하는 표현의 자유와 출발점이 약간은 다르다. 우리나라는 표현의 자유를 개인 발언의 차원 정도로 접근해왔다. 따라서 미국적 전통이 우리 사회에 적용이 가능한 것일까? 그의 진단이 듣고 싶었다.
KISO 정책팀(이하 KISO): 이 교수님께서 지난 KISO포럼에서 발제하신 내용 가운데 미국 수정헌법의 전통이 사회적인 영향력이 대단하며, 이것이 미국의 민주주의의 기반이 되고 법질서의 바탕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지금 어떤 상황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림> 미국의 철학자 알렉산더 미클존
이준웅 교수: 1988년 시민이 ‘개헌’을 쟁취하서 6공화국이 탄생했고, 민주화 이행이후 민주주의가 강화하고 있습니다. ‘자유’와 ‘민주’를 강조하는 헌법을 두고 정부를 포함한 누구도 함부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는 없다는 인식이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우리도 새로운 민주적 전통을 만들어가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일단 ‘정부가 과도하게 나서는 전통’이 있습니다. 또한 시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일단 ‘정부에 정책적 개입을 요청하는 전통’도 있습니다. 저는 문재인 정부에서 이런 전통들이 계속될까 우려합니다. 우리나라에는 특히 정부가 진흥정책을 남발하는 독특한 전통이 있습니다. 정부정책을 위해서 일련의 ‘진흥법’을 마련하면서 특정 요건을 갖춘 대상만을 진흥의 대상으로 설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진흥한다고 하면서 사실상 내용적으로는 규제를 강화하기도 합니다.
인터넷 정책이 대표적으로 그러합니다. 정부가 나서서 뭔가를 진흥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정작 진흥보다는 규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진흥 정책’의 진짜 심각한 문제는 정책을 추친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합의적이거나 협의적이지 않고, 하향식이며, 지도적입니다. 따라서 진흥하겠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정부 당국이 뭔가 규제하고 있는 결과가 됩니다. 이런 ‘진흥’ 정책는 성패는 실은 시민사회의 역량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시민사회의 역량을 넘어서는 규제가 시행되면, 실제로 그 규제는 효과가 없을 것이고, 시민사회의 역량 이하의 규제는 불필요한 전시성 규제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정책이 진행되면서, 시민들은 정책의 대상이 될 뿐 스스로 참여하는 시민적 주체가 되지 못합니다. 정책 과정이 곧 시민의 민주주의 교육 과정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정부에서 인터넷 환경을 순화하기 위한 언어사용 정책을 추진하는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인격권 보호니 청소년 보호니 하는 명목으로 정책을 추진합니다. 인터넷 환경의 청정화라는 진흥정책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정부정책에 따라 인터넷 사업자는 구체적으로 ‘발언의 목록’을 만들어 해당 발언을 삭제하거나 발언자를 찾아서 이용권한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실제 이런 일이 벌어졌죠. 그러나 이런 규제 또는 진흥은 결국 소용이 없게 됩니다. 인터넷 이용자는 자발적으로 변종 표현을 만들어서 사용하고, 새로운 아이디로 새로운 서비스로 옮겨 가서 문제의 발언을 계속합니다. 결국 최초의 정책은 별반 효과가 없다는 식으로 평가를 받게 되고, 더 강한 규제안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다가 결국은 ‘누구도 지키지 않는 규칙’ 또는 ‘누구도 지킬 수 없는 규칙’만 남게 됩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식의 진흥 정책 또는 규제 정책이 한 둘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진흥 정책을 남발하는 독특한 전통이 있습니다. 정부 정책을 위해서 여러 ‘진흥법’을 마련하면서 특정 요건을 갖춘 대상만을 진흥의 대상으로 설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진흥한다고 하면서 사실상 내용적으로는 규제를 강화하기도 합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런 전통이 계속될까 우려됩니다.”
KISO: 현재 정부는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로 표현의 자유 신장 등을 목표로 공적 규제의 축소 자율규제의 확대 및 활성화 방안 등 다양한 사안을 검토 중입니다 이에 대한 교수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이준웅 교수: 정부에서 그간 공적 규제의 영역이었던 것은 민간 자율규제의 영역으로 환원하겠다는 생각에 기본적으로 찬성합니다. 다만 앞서 설명했듯이 이러한 것이 건전한 시민사회를 육성하는 방향으로 신중히 진행되어야 합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안건 가운데 증오발언 규제에 대한 사안을 예로 들자면, 특정한 증오발언은 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분들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발언의 내용을 근거로 발언 행위 자체를 규제하자는 식의 주장은 위험합니다. 이런 규제는 일단 발언의 자유를 현저하게 위축해서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효과의 측면에서 예상해 보아도 그렇습니다. 지켜지지 않는 규칙이 되거나 지킬 필요가 없는 규칙이 될 우려가 큽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사례를 들어 봅시다. 정부에서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함부로 ‘진흥’한다고 나설 일도 없고, 반대로 이런 커뮤니티에서 불순한 이야기가 오고 간다고 ‘규제’에 나설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파악해서 현실에서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을 읽다보면 층간소음 문제와 같은 사적 갈등 사안이 등장합니다. “우퍼를 통해 윗집에 공격하는 게 최선이다”, “참고 살아야지 별 수 없다”, “욕설이나 혐오적인 행위로 복수해야 한다” 등 다양한 의견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의견을 교환할 때 혐오 및 증오 표현이나 욕설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제시한 의견에 ‘바닥재 등을 보강해 층간소음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 나오기도 하고, 다른 창의적이고 건설적인 방법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층간소음 갈등해결 사례’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시민들이 스스로 제시한 의견의 타당성을 견주어 보고, 갈등 해소를 한 사례를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겁니다. 많은 인터넷 공동체에서 많은 사안에 대해서 이런 광경을 실제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간혹 욕설과 비방으로 가득 찬 공간이 형성되기도 하지만, 그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조차 이용자들이 자율적으로 규칙을 형성해서 스스로에게 규칙을 적용하는 사례를 분명 발견할 수 있습니다.
KISO: 교수님은 발제문에서 강건한 시민성에 바탕을 둔 강한 민주주의 국가의 반대 개념으로 약한 민주주의 국가를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리고 “약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부가 발언의 자유를 더 강조해서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물론 약한 민주주의 국가의 경우에는 그럴 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이런 맥락이 한국에서는 정부에 의한 규제를 정당화하는 논리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이준웅 교수: 한국은 약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강한 민주주의를 향해 나가고 있습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말은 이런 과정에 발언의 자유가 더욱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정부는 규제자나 진흥자로서 하향식으로 규칙을 만들어서 시민들에게 던저줄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스스로 발언의 자유를 행사해서 규칙을 형성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논의 자체가 거의 없었던 성소수자 사안이 이제 전면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모든 분야와 수준에서 성차별 금지 정책과 성추행 고발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새로운 정책에 대한 요구가 많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우려스럽게도 이런 요구 중에 시민들이 정부에게 규제를 요청하는 양상이 있습니다. 사회구성원이 국가에게 자신을 욕하는 발언을 처벌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죠. 특히 정부가 ‘콘트롤 타워’가 되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이런 식의 요구는 그 자체로도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정부가 그런 정책을 만듦으로써 시민성을 약화하기에 한층 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이런 정책은 효과도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증오발언은 더욱 변화하고 음성화되어 새로운 방식으로 돌아다닐 것입니다. 즉 발언의 자유의 관점에서도 문제지만, 증오발언 규제라는 원래 목적에 비추어 봐도 효과가 없다는 겁니다.
우리사회의 변화에 따라 대두한 차별과 증오, 그리고 혐오에 대해 시민들 스스로 자유롭게 말하고, 시민들 스스로 규칙을 제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사안들은 문제가 광범위하고 어렵기 때문에 각 분야 전문가들의 도움이 없이는 의제를 형성하고 논의의 원칙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전문가들이 논의의 장에 적극 참여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정부가 법으로 단칼에 ‘규제’를 하겠다고 나서거나, 공적 기구를 만들어 ‘진흥’을 하겠다고 나서는 일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하향식 정책은 그 자체도 효과가 없지만, 시민들이 스스로 시민성을 함양하는 데에도 악영향을 끼칩니다.
<상편 끝>